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야심차게 밀어붙이던 ‘1인 1표제(대의원제 사실상 폐지)’ 시도가 당 내부의 거센 파열음에 부딪혀 속도 조절에 들어갔다. ‘당원 주권’이라는 명분을 앞세웠지만, 당내에서는 “정청래 대표의 차기 당권 연임을 위한 ‘룰 바꾸기’이자 사당화(私黨化) 시도”라는 비판이 비등하다. 급기야 지도부 회의에서 최고위원이 당대표 면전에서 “절차적 정당성이 없다”고 직격탄을 날리고 퇴장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민주당은 24일 당무위원회를 열고 당헌·당규 개정안의 최종 확정을 위한 중앙위원회 소집을 당초 예정된 28일에서 다음 달 5일로 일주일 연기하기로 의결했다. 표면적으로는 “숙의 과정을 더 거치겠다”는 이유를 댔지만, 실제로는 당 안팎에서 터져 나온 ‘졸속 처리’ 비판과 내부 반발을 감당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 李대통령 순방 중 ‘집안 싸움’… 지도부 회의서 터져 나온 “독단적 불통”
이날 민주당의 내홍은 공개석상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오전 최고위원회의에서 이언주 최고위원은 작심한 듯 정 대표를 향해 쓴소리를 쏟아냈다. 이 최고위원은 “대통령이 해외 순방 중인 상황에서 이견이 많은 안건을 밀어붙여 당원을 분열시킬 필요가 있느냐”며 지도부의 무리한 속도전을 정면 비판했다.
그는 “수십 년간 운영해온 제도를 단 며칠 만에 폐지하는 것이 맞느냐”며 절차적 민주성 결여를 지적한 뒤 회의장을 박차고 나갔다. 정 대표는 이 최고위원의 발언 내내 굳은 표정으로 침묵했다.
당무위원회 현장에서도 고성이 오가는 등 진통이 이어졌다. 조승래 사무총장은 “이견보다는 다양한 의견”이라며 진화에 나섰지만, 당무위 투표 결과 총원 80명 중 48명만이 참여하는 등 어수선한 분위기가 역력했다.
■ 명분은 당원 주권, 속내는 정청래 재집권 플랜?
정 대표가 추진하는 이번 개정안의 핵심은 대의원과 권리당원의 표 가치를 현행 ‘20대 1’ 미만에서 ‘1대 1’로 맞추는 것이다. 사실상 대의원제를 무력화하는 조치다. 정 대표는 이를 “이재명 대통령 시절부터의 숙원”이라며 ‘이심(李心)’을 끌어다 방패막이로 삼고 있다.
정 대표는 지난 2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과거 이 대통령의 발언과 원외위원장들의 성명서를 잇달아 게시하며 정당성을 강변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여의도 정가에서는 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분위기다. 이번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가장 큰 수혜자가 바로 정 대표 자신이기 때문이다. 정 대표는 지난 전당대회 당시 대의원 투표에서는 박찬대 의원에게 밀렸으나, 강성 권리당원의 압도적 지지로 당선됐다.
대의원 표의 가치가 사라지면, 조직력보다 팬덤에 의존하는 정 대표가 내년 8월 전당대회에서 연임할 가능성은 매우 높아진다.
■ 지지층 업고 ‘마이웨이’…민주당, 향배는?
문제는 이번 사태가 단순한 제도 변경을 넘어 민주당의 체질 변화를 예고한다는 점이다. 정 대표는 1인 1표제 외에도 지방선거 예비경선 권리당원 100% 반영, 당대표 선거 권리당원 비율 상향 등을 동시다발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이는 당의 의사결정 구조를 극단적 지지층 중심으로 재편하겠다는 신호탄으로 읽힌다.
한 정치평론가는 “1인 1표제는 팬덤 정치를 통해 당권을 장악하려는 전략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대중적 확장성보다는 내부 결속, 즉 ‘집토끼’ 단속에만 몰두하다가 민심과 괴리될 수 있다는 경고다. 실제 최근 전현희 최고위원 등 당내 강경파들이 ‘내란 전담 재판부 도입’, ‘검사장 탄핵’ 등 과격한 주장을 쏟아내는 것도 정 대표가 주도하는 강성 기류와 무관치 않다.
민주당은 일단 12월 5일로 최종 의결을 미루며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 정 대표는 "반대 의견은 없다, 만장일치에 가깝다"며 자신감을 보였지만, 당내에서는 "침묵하는 다수의 불만이 임계점에 달했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