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에 몰아친 한파보다 더 매서운 것은 국민의힘이 마주한 ‘정치적 엄동설한(嚴冬雪寒)’이다. 12·3 비상계엄 사태가 발생한 지 정확히 1년이 되는 오는 3일, 보수 야당은 존폐의 기로에 섰다. 지난 1년간 ‘반성’과 ‘혁신’ 대신 ‘방어’와 ‘회피’로 일관했던 시간들이 고스란히 청구서가 되어 돌아왔다는 지적이다.
특히 당시 여당 원내대표로서 계엄 해제 표결을 방해했다는 혐의를 받는 추경호 의원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은 국민의힘이 처한 딜레마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영장이 발부된다면 당은 ‘내란 동조 세력’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궤멸적 타격을 입게 되고, 기각된다 해도 ‘사법부 흔들기’에 나선 거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공세를 막아낼 논리가 빈약하다. 이는 지난 1년 동안 국민의힘이 ‘계엄’이라는 헌정 유린 사태에 대해 명확한 선 긋기와 뼈를 깎는 쇄신을 보여주지 못한 탓이 크다.
◇ ‘내란 프레임’ 자초한 보수 야당의 무기력
2일 정치권에 따르면 국민의힘은 추 의원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를 두고 “야당 말살 기도”라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송언석 원내대표는 “조작된 퍼즐”이라며 무죄를 주장했고, 장동혁 대표는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구속영장”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당 밖의 시선은 싸늘하다.
문제의 본질은 ‘법리’ 이전에 ‘정치적 책임’에 있다. 1년 전 그날, 헌법 기관인 국회의원의 표결권을 물리력으로 막으려 했다는 의혹은 자유민주주의 정당으로서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오점이다. 그럼에도 국민의힘은 지난 1년간 윤석열 전 대통령 및 계엄 세력과의 관계 설정에서 갈팡질팡했다. ‘내란 정당’이라는 민주당의 공세를 ‘정치 보복’으로만 치부하며, 정작 국민들이 요구하는 처절한 반성은 외면했다. 그 결과가 지금의 사법 리스크와 고립이다.
◇ 뒤늦은 사과, 그리고 여전한 ‘태극기’의 그늘
계엄 1년을 하루 앞둔 이날, 국민의힘 재선 의원 모임 ‘대안과 책임’이 준비 중인 입장문은 만시지탄(晩時之歎)이다.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한 책임을 통감한다”, “윤 전 대통령 및 계엄 옹호 세력과 단절하겠다”는 내용은 1년 전에 나왔어야 했다. 당내 주류가 아닌 일부 의원들의 뒤늦은 목소리가 얼마나 진정성 있게 국민에게 다가갈지 미지수다.
오히려 현장에서는 당의 현주소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규탄대회 주변에서는 강성 유튜버와 지지자들이 “계엄은 정당하다”, “윤석열 석방”을 외쳤다. 당 지도부가 이들을 제지해달라고 요청해야 할 만큼, 국민의힘은 극우 포퓰리즘 세력과 합리적 보수 사이에서 길을 잃었다. 중도층이 보수 야당에 등을 돌리게 만드는 결정적 요인이다.
◇ 끝이 보이지 않는 헛발질
국민의힘이 지리멸렬한 사이, 이재명 정부와 민주당은 거침없이 질주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시민단체 주관의 촛불 집회에 참석해 ‘응원봉’을 들 예정이다. 국무회의에서는 “나치 전범 처리하듯 끝까지 처벌해야 한다”며 공소시효 배제 등 강력한 입법 드라이브를 걸었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이를 견제할 도덕적 권위도, 정치적 동력도 상실했다. ‘계엄 원죄(原罪)’를 씻어내지 못한 탓에 정부, 여당의 드라이브를 비판하면 곧바로 “반성 없는 내란 옹호 세력”이라는 역공을 맞기 때문이다.
내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에는 전운이 감돈다. 추경호 의원의 구속 여부가 단기적인 분수령이 될 수 있겠지만, 근본적인 위기는 변하지 않는다. ‘윤석열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헌정 질서 파괴에 대해 명확히 책임지지 않는 한 국민의힘에게 ‘봄’은 요원하다. 지금 국민의힘에 필요한 것은 억울함을 호소하는 규탄대회가 아니라, 보수의 가치를 땅에 떨어뜨린 과오에 대한 처절한 석고대죄(席藁待罪)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