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명(친이재명) 단일대오’를 자랑하던 더불어민주당 내부에서 파열음이 터져 나왔다. 진원지는 당의 투톱인 정청래 대표와 김병기 원내대표다. 김 원내대표를 둘러싼 사생활 및 법인카드 유용 의혹이 불거지자, 정 대표가 감싸기 대신 공개 사과라는 초강수를 두면서다. 정치권에서는 이번 사태를 단순한 도덕성 논란이 아닌, 포스트 이재명 체제를 둘러싼 주류 세력 간의 권력 투쟁, 이른바 ‘명청대전’의 신호탄으로 해석하고 있다.
◇ "악의적 왜곡"이라던 김병기…등 돌린 정청래
사건의 발단은 김병기 원내대표 전직 보좌관의 폭로였다. 사생활 비위 의혹에 이어, 김 원내대표의 배우자가 과거 지역구 의회 부의장 시절 법인카드를 유용했다는 의혹까지 더해지며 도덕성에 치명타를 입었다. 김 원내대표 측은 즉각 "공익제보자를 가장한 악의적 왜곡"이라며 법적 대응을 시사했지만, 여론은 싸늘하다. 평소 민주당 편을 들던 진보 성향 매체들마저 등을 돌리며 사퇴론을 거론하는 실정이다.
주목할 지점은 당의 사령탑인 정 대표의 태도다. 정 대표는 26일 기자회견을 자청해 "당 대표로서 국민과 당원들께 송구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이어 "사안을 매우 심각하게 보고 있다"며 "며칠 후 원내대표의 정리된 입장을 지켜보겠다"고 덧붙였다. 사실상 자진 사퇴를 우회적으로 종용한 '최후통첩'이나 다름없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 '내 식구 감싸기' 멈춘 정청래, 왜 지금인가?
정 대표의 이번 대응은 과거와 확연히 다르다. 그간 민주당 지도부는 최민희, 장경태 의원 등 강성 친명계 인사들의 각종 막말과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침묵하거나 엄호하는 태도로 일관해 왔다. 유독 김 원내대표에게만 가혹한 잣대를 들이댄 배경에는 고도의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우선 2026년 지방선거가 코앞이다. 서울시장 선거 등 수도권 승패가 달린 상황에서 원내사령탑의 도덕성 리스크를 안고 가는 것은 정 대표 본인에게도 치명적이다. 당 지지율 하락을 막기 위해 읍참마속의 심정으로 '손절'을 택했다는 것이다.
더 깊숙한 내막에는 당내 권력 지형의 재편 의도가 엿보인다. 김 원내대표는 그간 공천 관리 등 당무의 핵심을 쥐고 흔든 '이재명의 복심'이자 실무형 실세다. 반면 정 대표는 강성 당원들의 압도적 지지를 기반으로 한 '팬덤 정치'의 정점이다. 정 대표 입장에선 김 원내대표가 구축해 온 기존 친명 기득권 세력을 약화시키고, 온전히 자신의 친정 체제를 구축할 기회로 삼았을 가능성도 존재한다.
◇ 30일이 분수령... 친명 내전으로 비화하나
당내에서는 박수현 수석대변인에 이어 서울시장 후보군인 박주민 의원까지 가세해 "엄중한 상황"이라며 김 원내대표를 압박하고 있다. 김 원내대표는 오는 30일 거취와 관련된 입장을 표명할 예정이다.
만약 김 원내대표가 사퇴를 거부하고 버티기에 들어갈 경우, 민주당은 겉잡을 수 없는 내홍에 휩싸일 전망이다. 김 원내대표를 따르는 조직표와 정 대표를 지지하는 당원 세력이 정면충돌하는 시나리오다. 이는 곧 '친명'이라는 깃발 아래 봉합돼 있던 주류 세력의 분화를 의미한다.
